미하시 X 아베
이마에 땀이 찼다. 마운드에 가득한 열기는 평소보다 유난히 심했다. 흐른 땀은 눈썹에 걸려 대롱대롱 매달렸다. 조금 있다면 눈꺼풀 위로 떨어질 것 같았다.
팀원들의 자잘한 실책들은 미하시의 어깨를 짓눌렀다. 게다가 심판이 유난히 스트라이크존을 작게 잡아 까다로웠다. 볼카운트가 아베와 그의 생각대로 나오지 않아 초조해졌다. 경기가 잘 안 풀릴 때면 미하시는 숨이 막혀왔다. 니시우라에서는 느끼기 힘들었지만 예전에 미호시에서 자주 맞닥뜨렸던 감정이었다.
‘그래도 지금은 혼자가 아니야…….’
미하시는 홈에 든든히 버티고 있는 아베를 보며 마음을 다잡았다. 크게 심호흡을 하니 조금 나아진 것도 같았다. 그가 흔들리면 팀이 흔들린다. 마히시는 자신을 다잡을 수밖에 없었다.
아베는 뭐가 마음에 안 차는지 감독과 시선을 교환했다. 싸인이 오가더니 타임을 외쳤다. 게임의 흐름이 답답해졌으니 그럴 만도 했다. 타이밍이 아주 좋아서 미하시는 아베가 자신의 생각을 다 읽는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내야수와 포수가 투수의 옆에 옹기종기 모였다. 공이 영 아니었으니 미하시는 아베가 화낼까 싶어서 눈치를 봤다. 아베가 글러브로 입을 가리더니 퉁명스레 말했다.
“저쪽이 잘 해서 방해하려고 불렀어.”
아베의 말에 미하시는 고개를 돌려 한숨을 쉬었다. 고개를 돌린 곳에는 3루 주자가 멀뚱히 서 있었다. 1루와 3루에 있는 주자는 위협적이었다. 하지만 연습한 보람이 있는지 3루 주자를 보고 나니 마음이 차분해졌다.
“하나씩 잡자. 우리가 앞서고 있어. 침착하게 하면 돼.”
미하시는 아베의 말에 다시 고개를 돌려 고개를 끄덕였다.
“으,응!”
이대로 질 수는 없었다. 등에 단 1번이 무거웠다. 팀원들은 자유롭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1루 주자는 발이 빠르니 도루를 조심하자, 이번 타자는 번트를 할지도 모르겠다. 말이 오가는데 아베가 옆에 다가왔다.
‘아베 가까워!’
미하시는 아베의 손이 시야를 가리자 깜짝 놀라 병아리 마냥 입을 벌렸다. 뻐끔거리는데 그는 개의치 않고 미하시의 얼굴에 맺힌 땀을 닦아냈다. 닿았다 떨어지는 그의 손에 시야를 괴롭히던 것들이 사라졌다.
“아,아베?”
“땀이 많이 났네. 괜찮아? 물은 많이 마셨어?”
아베는 이렇게 자주 미하시를 챙겨주고는 했다. 미하시는 그게 마냥 좋아서 어쩔 줄 몰랐지만, 이렇게 불쑥 생각 이상의 행동을 할 때면 놀라서 어쩔 줄 모르게 된다.
“으,응. 아,베도 땀 많이…….”
미하시는 아베의 얼굴이 땀범벅인 것을 보고 손을 뻗었다. 포수 장비는 무겁다. 그걸 입고 있으니 힘들만도 했다.
“그 손으로? 됐어.”
하지만 아베는 미하시의 손을 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생각해보니 손이 지저분하기는 했다. 한 손에는 글러브, 한 손에는 송진이 잔뜩 묻어 있었다. 이 손으로 닦다가는 그의 얼굴이 지저분해질 것이다. 그러면 팔로 닦아주면 되지 않을까? 손목 위로는 그래도 깨끗한 편이었다.
“나, 팔로 하, 할 수 있어.”
닦아주려 다시 다가가자 아베는 한 발자국 물러섰다. 미하시는 그의 행동에 울적해졌다. 자신의 도움을 잘 받지 않는 아베의 몸짓이 서운했다.
“괜찮아. 내가 닦으면 되지.”
아베는 평소처럼 굴었다. 그러니까 미하시가 머뭇거리는 것을 딱히 뭐라 하지 않고 내버려 뒀다는 말이다. 미하시와 그가 입을 다물자 팀원들은 물끄러미 그들을 바라봤다. 정적을 깬 것은 타지마였다.
“연애는 경기에서 이기고 하지.”
미하시는 얼굴이 터질 듯 붉어졌다. 모두들 알고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직접 말한 적은 없었다. 같이 있는 사람들 중에는 놀라는 이가 하나도 없었다. 도리어 타지마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눈꼴시다고 투덜거리는 사람마저 있었다. 사카에구치는 아예 웃기 시작했다. 한 명이 웃으니 연쇄적으로 다 웃었다. 미하시도 실실거리고 웃었다. 웃지 못하고 굳은 것은 아베 뿐이었다.
“아, 긴장 풀렸다.”
“이 자식들……. 지면 가만 안 둘 줄 알아.”
아베의 엄포에도 아무도 반응하지 않았다. 도리어 재밌다는 듯 낄낄거리기 시작했을 뿐이었다. 글러브로 가려서 망정이지 다른데서 알았다면 시합 중에 뭐하냐고 화를 냈을 것이었다.
“나, 나랑 아베 사귀…….”
“조용히 해, 미하시!”
미하시는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것 같아 하늘을 두둥실 날아가는 기분이었다. 마치 리미트가 해제된 것처럼 무엇이든 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시간이 끝나기 전에 3루 주자를 보고 흩어지자, 미하시는 준비를 하고 아베를 바라봤다. 공을 받아주는 그가 있다면 미하시는 무적이었다. 그의 미트에 시원한 소리를 내면서 공을 넣고 싶었다. 마음을 담아 던지면 늘 그렇듯 아베는 알아줄 것이었다.
미하시의 바람 덕인지 삼진을 뽑아내며 그날 경기는 더위를 날려버릴 만큼 시원하게 이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