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있는 자리

아키마루 & 하루나








 안경이 망가졌다. 큰일은 아니었다. 체육시간에 잠시 방심한 틈에 공이 날아왔다. 피하려 했지만 늦었고 얼굴을 맞아 안경이 날아갔을 뿐이었다. 

 인식의 경계가 흐릿해지는 순간이 있다. 잠에서 깼을 때와 비슷하다고 할까. 시력이 나쁜데 안경이 없으면 그런 상태가 되고 만다. 아키마루는 허전한 얼굴을 만지고는 한숨을 쉬었다. 잘 보이지 않으니 얼굴이 찌푸려졌다. 흔들리는 상이 조금은 나아졌다. 

 문제는 수업 후 집에 가서 예비 안경을 가지고 돌아와야 한다는 점이었다. 안경이 없으면 두통에 시달려서 진통제도 먹고 싶은데, 양호실까지 갈 방법이 없었다. 교실에 돌아오는 길에도 간신히 친구들의 도움을 받은 참이었다. 이래서 집까지 어찌 가나 싶어서 한숨이 절로 나왔다. 수업이고 뭐고 망했다 싶어 책상위에 엎드렸다. 

 “어이, 쿄헤이. 자냐?”

 누가 머리에 손을 올렸다. 다른 사람이면 팔을 쳐냈겠지만, 아주 익숙한 목소리라 그저 눈동자만 위로 향했다. 소꿉친구는 몸을 구부려 얼굴을 가까이 했다. 안경 벗으면 어떤지 알기에 하는 배려였다. 

 “안자.”

 “이거 먹고 자.”

 하루나가 물과 진통제를 내밀었다. 아키마루는 일어나서 받아먹었다. 고맙다는 인사도 빼먹지 않았다. 평소엔 대부분 무신경해보이지만 그래도 가끔 살뜰한 구석이 있었다. 다시 팔베개를 하고 몸을 숙이자 어깨에 겉옷을 덮어주고 사라졌다.  

 남의 반인데 당당하게 들어오는 뻔뻔함이 그 답다고 여겨졌다. 아직 진통제는 듣지 않았는데도 아픔이 사라져갔다. 




 “연습 안가?”

 “당연히 가야지. 넌 오늘 힘들겠지?”

 “안경 가지고 갈 건데.”

 하루나가 멈칫 서서 아키마루를 바라봤다. 그리고 이내 분위기가 부드럽게 변했다. 딱 봐도 의외지만 기분 좋다는 심정이 다 티 나는 행동이었다. 저래서 타자랑 심리전은 어떻게 하나 싶었다. 

 니시우라전 이후로 하루나는 점점 예전처럼 변해갔다. 중학교 때가 아니라 초등학교 무렵쯤? 연습을 열심히 하기 시작하자 그의 관심을 제법 많이 독차지 할 수 있었다. 나름 이쪽에서 잘해준다고 노력했을 때보다 좋은 반응이라 조금은 허탈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잘해주면 받는 상대는 기분이 좋을 수는 있겠지만, 받는 상대가 원하는 일을 하면 더 효과가 좋을 테니까. 

 아마도 하루나는 아키마루와 ‘야구’를 공유하고 싶었으리라. 아키마루는 자기 딴에는 야구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하루나의 이상과는 홋카이도와 큐수 만큼 떨어져 있던 모양이었다. 

 뭐, 좋다. 아키마루도 야구를 좋아했다. 하루나 한정이라면 투수도 잘 할 자신이 있었다. 센스는 나쁘지 않았다. 노력이 부족했으니 따라잡기는 힘들겠지만, 요즘 부쩍 늘었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 

 생각에 빠져 있다 발이 돌부리에 걸리자 하루나가 팔을 잡았다. 

 “괜찮아? 넘어지면 큰일 난다.”

 “내가 가벼운 것도 아니고 너도 같이 넘어지면 어쩌려고 잡아.”

 미간을 찌푸리며 한 소리 하자 어깨를 으쓱였다. 그럴 리 없다는 투다. 자신만만하고, 야구를 좋아하는 평상시의 하루나였다. 야구가 아니라면 아키마루를 돌아보지 않을 하루나. 아키마루는 속에서 울컥하고 뭔가 올라왔다. 

 다음 행동은 충동적이었다. 아키마루는 교복 타이를 잡아당겨 하루나의 입술을 훔쳤다. 살짝 닿은 촉감은 촉촉했는지, 까칠했는지 혹은 말랑했는지 잘 모르겠다. 잘 보이지 않는 하루나의 얼굴처럼 인지의 영역 밖이었다. 언뜻 뭉뚱그려 보이는 그의 뺨에 붉은 기운이 스치는 듯 했다. 

 “……집에 데려다 줄게.”

 “부탁할게.”

 하루나의 옆자리를 차지할 가능성이 보였다. 그는 언제나 제법 귀여웠다. 



- fi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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