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갑자기 시작한다.

리오 & 쥰타





오의 이상형은 가까이 있었다. 까만 머리에 성격이 드러난 얼굴. 1학년들끼리 모여서 친목을 빙자한 수다를 떨 때, 리오의 외모 취향을 들은 진은 이렇게 답했다. 

 “그거 쥰타 선배잖아?”

 “엑. 그러네.”

 사례가 들렸다.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없다면 거짓말이겠지만 - 유치원 때는 끝내주게 귀여웠다 – 여자애들과는 아예 다른 모습을 보일 무렵부터는 수비범위 밖에 있다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게 쥰타의 괄괄한 성격 탓에 휘둘리는 역할은 늘 리오의 차지였다. 

 “그래서 늘 네가 사귀는 애들은 쥰타 선배랑 비슷했구나.”

 진의 덧붙인 말이 쐐기가 되어 리오의 뒤통수에 박혔다. 세상에나 방금 무슨 소릴 들은 거지? 잠시 현실도피를 하려던 리오는 애써 반박했다. 

 “그럴 리가 없잖아. 난 매저가 아니라고!”

 “그래. 도M 이지.”

 버럭 화를 내려는데, 부실의 문이 열렸다. 

 “누가 매저키스트야?”

 “앗 선배님 아직 안가셨어요?”

 “놓고 간 물건이 있어서.”

 익숙한 목소리였다. 토세이의 에이스 타카세 쥰타였다. 선배의 행차에 소소한 잡담은 금세 멈췄다. 사물함을 열고 쇼핑백을 꺼내 든 쥰타는 가라앉은 분위기를 보고 혀를 찼다. 

 “걱정 말고 놀아라. 리오 적당히 괴롭히고.”

 “에에, 왜요! 한창 재밌는데!” 

 “내 포수니까. 너무 괴롭히면 나중에 반응이 적단 말이야. 흥이 식어.”

 “우우, 횡포다!”

 “캬아악! 내가 동네북이냐!”

 쥰타의 상냥해보이는 말에 감동했던 것도 잠시. 실컷 놀림감이 되자 리오는 참지 못하고 폭주했다. 진을 필두로 모두 배를 잡고 웃었고, 리오는 결국 쥰타의 손에 제압되어 뒷덜미를 잡혀 끌려나왔다. 뚱해져서 비죽 나온 입에 과자를 가득 물려 놨음은 물론이었다.


 “재밌는 시간일 텐데 괜찮아?”

 쥰타가 놓고 간 것은 세탁물이었다. 무게도 제법 되는지라 리오는 자연스레 그의 짐을 대신 들었다. 아무래도 쥰타의 어깨에 쓸데없는 무게를 싣고 싶지 않았던 탓이다. 

 “진이 얼마나 놀려대는지 멘탈이 남아나질 않겠어요. 이쪽이 속 편하죠.”

 둘의 집은 같은 동네에 있었다. 흔히 말하는 소꿉친구 사이였다. 한 살 차이면서 온갖 형 행세를 다 하는 쥰타를 리오는 제법 잘 따랐다. 로카는 멋졌지만 무서웠고, 놀리고 제멋대로 해도 함께 어울려주며 챙겨주는 쥰타가 더 편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그 점은 변하지 않았다. 

 그런 쥰타를 다른 눈으로 보고 있었다는 자각은 리오에게 충격이었다. 힐끔 쳐다보면 새까만 머리카락과 동그란 귓불이 보인다. 사소한 부분까지 참 외향은 리오의 취향이었다. 이렇게 훌쩍 더 커버리니 더 묘한 기분이 들었다.

 “뭐, 나야 덕분에 편하지만!”

 으쓱 어깨를 올리는 얄미운 모습을 보면 성격은 영 타입이 아니었다. 선배들 앞에서는 순한 양이면서 꼭 제 앞에서만 다르게 굴었다. 후배들에게는 나름 친절했지만, 리오는 그 카테고리에 들어가지도 않는 모양이었다. 쥰타 몰래 혀를 찼다. 

 “어서 가자! 저녁은 우리 집에서 먹고 가!”

 그런데 왜 쥰타가 잡아당기는 손목이 화끈거리는 걸까. 술을 마신 것도 아닌데 순간 현기증이 일었다.  진이 탄산음료에 알콜을 탄 건가? 

 “괜찮아?”

 그 긴 몸이 휘청거리면 옆에서 모를 리 없었다. 쥰타가 걱정스러운 표정을 바라보자 심장이 멋대로 뛰었다. 

 ‘오, 할머니 절 보호해주세요.’

 이번에는 그녀의 유품도 아무 소용이 없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 fi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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