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혼 / 미하베 교류회 신간 샘플 페이지입니다.
Ⅰ
사카에구치의 안내를 받아 걷다보니 금세 어두워졌다. 시합 후 병원에 간 아베를 제외하고 모두 함께 반성회까지 하고 헤어졌으니 제법 시간이 흐르기도 했다.
타지마와 함께 간 아베의 집은 동네에 흔히 보이는 양식이었다. 아마 혼자 왔으면 엄청 헤맸으리라. 해가 저물어 어두운 골목길은 거기서 거기로 보였다. 미하시는 자전거를 끌어 집 앞에 멈췄다. 문패에 아베라는 글자가 음각되어 있었다. 여기서 아베를 부른다면 대답할 사람이 네 명이나 산다고 생각하니 조금 웃음이 나왔다.
“어서 오세요!”
벨을 누르니 안에서 익숙하지만 낯선 목소리가 들렸다. 아베의 시간을 어릴 적으로 돌린 것 같은 사람이 나와서 손님을 반겼다. 밝은 미소는 아베와 닮았지만 달랐다. 미하시가 아는 아베는 이렇게 웃은 적 없는 사람이었다. 눈 앞의 미소는 아직 때 묻지 않은 순수함이 있었다. 아베라면 좀 더 생각이 담긴 표정을 지을 터였다.
이질감을 느낀 탓인지 미하시는 눈을 크게 뜨고 아무런 대꾸를 하지 못했다. 다행히 그의 관심은 옆에 있는 타지마에게 향해 있었기에 둘은 왁자지껄하게 떠들며 집 안으로 향했다. 사카에구치와 미하시는 느긋하게 뒤를 따르면 됐다.
“우리 왔다.”
“응.”
아베는 응접실로 쓰는 공간에 앉아 있었다. 무릎에 둘둘 감긴 붕대가 제법 두꺼워보였다. 미하시는 다시 마음이 무거워졌다. 자신이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는 사실은 이미 알았다. 단지 머리로 아는 것과 심정이 따로 노는 일이 문제였을 뿐이었다. 아베에게 배터리가 나눠져야 할 책임을 떠넘겨서 이리 되었을까 하는 상념은 죄책감이 되어 미하시의 가슴을 할퀴었다.
“편한 곳에 앉아.”
손님이 왔다며 읽던 신문을 내려놓고 자리를 권하는 아베는 생각보다 편안해 보였다. 다행이라고 여기면서도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아베에게 승리를 안겨주고 싶었지만, 오늘 니시우라는 졌다. 괜한 자격지심에 초조해졌다. 팀의 그 누구도 미하시에게 책임을 묻지 않은 문제였다. 오직 스스로 자책하고 있었다.
사카에구치는 간단히 안부를 물었고, 타지마는 앞으로 있을 신인전에 대해 이야기 했다. 미하시는 그들의 대화에 끼어들지 못하고 그저 옆에서 흐름을 지켜봤다. 사카에구치처럼 사람을 배려하는 법은 모르고 타지마처럼 대화를 주도할 줄도 몰랐다. 미하시는 침묵했다. 아베라면 미하시가 말할 기회를 줄 터였다. 이는 너무나 당연해서 조금의 의심조차 하지 않았다.
팀이 제대로 돌아가기 위해서 주전 포수는 꼭 필요했다. 그가 나을 때까지 미하시는 타지마와 호흡을 맞춰야 했다. 돌아오길 기다리는 마음은 모든 팀원들 중에 미하시가 제일 컸다. 말하지 않아도 아베가 알아줬으면 하는 욕심이 있었다. 팀에서 투수와 포수는 제일 가까운 사이라고 했다. 진짜 에이스로 만들어준다고 할 때부터, 아베는 미하시에게 제일 중요한 사람이었다. 아베도 자신을 그리 여겼으면 했다.
타지마는 아베의 동생에게 스윙을 가르쳐 주겠다며 뒤뜰로 나갔다. 저녁을 먹고 가라는 권유를 사양하며 사카에구치는 먼저 일어났다. 동생이 홀로 기다린다는 말에 아베는 그를 잡지 않았다. 사람들이 떠나고 드디어 미하시에게 기회가 돌아왔다. 정작 둘만 남아 있자 정적이 흘렀다. 미하시는 초조해서 입을 떼려고 했지만 아베가 먼저 선수를 쳤다.
“약속을 깨서, 미안!”
먼저 말을 꺼낸 쪽은 아베였다. 미하시는 화들짝 놀라 고개를 저었다. 아베가 미안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어찌 보면 책임을 피한 사람은 미하시였다.
“저,기, 어. 아, 그거, 는, 내가, 한심해서.”
“그게 아닌 것 알잖아, 미하시.”
미하시는 입을 다물었다. 아베의 얼굴을 바라보자 눈이 고요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미하시는 바싹 마른입을 축이려 침을 삼켰다.
아베는 미하시의 행동을 빤히 바라보며 살며시 웃었다.
“걱정 하지 마. 난 괜찮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