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축제합작 공개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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火花
‘가끔은 쉬는 것도 나쁘지 않아.’
하나이는 모모에 감독의 말을 기억하고 있었다. 색색의 등이 켜지고 달콤하고 고소한 좌판의 음식 냄새가 퍼지는 이곳에 온 것은 그 말 덕분이었다. 다음날 연습이 없는 일요일 밤, 축제에 모인 니시우라팀의 선수들은 두둑한 지갑과 즐거움을 맞바꿀 태세가 완벽했다. 어차피 아침부터 연습, 수업, 그리고 연습의 나날이었다. 남은 주말에는 연습시합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러다보면 용돈은 남아서 주머니에 쌓이게 된다. 그게 피가 되고 살이 되는 맛있는 음식과 즐거운 놀이에 쓰인다면 좋은 일일 것이었다.
“너무 풀어지지 말고!”
“어우, 역시 주장님.”
“걱정 말아! 오늘은 하나이도 놀아야지.”
그래도 노파심에 결국 한마디 하고 마는 하나이였다. 애들은 웃으며 손을 저었다. 말 그대로 자신의 걱정 때문이란 것을 잘 아는 그는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자, 그럼 가자!”
“와-!”
미하시는 신난다고 달려갔다. 아베는 한숨을 쉬면서 그 뒤를 향했다. 저러다 넘어지면 큰일 나지 싶은데 말리기도 전에 금세 인파에 휩쓸렸다. 다른 친구들도 삼삼오오 짝을 지어 즐기러 갔다. 먹을 것을 향해 맹렬히 달려가는 녀석들이 보였다. 하나이도 따라나서려는데 누가 손목을 잡았다. 고개를 돌리니 타지마가 서 있었다.
“어? 미하시랑 안 갔어?”
“아베랑 알아서 잘 놀겠지. 그나저나 팀원들하고 같이 놀게?”
“아무래도…….”
“걱정되니까?”
타지마가 빤히 바라보는 시선에 하나이는 멋쩍게 웃었다. 쓸데없이 걱정이 많고 책임감이 강한 성격 탓에 저러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타지마는 속이 탔다. 쉬려고 와서까지 그러고 있다니, 영 마음에 들지 않는 행동이었다.
“가자.”
타지마는 하나이를 반대방향으로 끌었다. 그는 당황한 채 타지마의 손에 이끌렸다. 힘으로 버틴다면 타지마가 끌고 갈 방법은 없었다. 그저 하나이가 머뭇거리고 있는 것이었다. 그런 기색을 느꼈는지 타지마는 그에게 말했다.
“가끔은 책임을 놓는 것도 좋아. 오늘은 대신 내가 널 책임져줄게.”
“……뭐?”
자신만만한 타지마의 말에 하나이는 얼빠진 대답을 해버렸다. 어디를 가도 여동생들을 돌보거나, 주장으로 팀원을 신경 쓰던 습관 탓인지 어색했다. 야구장에서야 더없이 믿음직하지만 평소에는 그저 개구쟁이로 보이는 타지마다. 그런데 지금은 4번 타자의 모습이 그에게서 보였다. 그래서 하나이는 홀린 듯 그가 이끄는 대로 걸어갔다.
축제에 온 사람들은 굉장히 많았다. 아직 초반인데도 한산하기는커녕 많은 인파가 돌아다니고 있었다. 편한 차림으로 다니는 이들도 많았지만 아름다운 색의 유카타가 눈을 어지럽혔다. 여러 색감의 옷들을 보고 있자니 축제의 등과 어우러져 들뜬 기분이 들었다. 하나이가 유심히 주변 사람들을 보고 있자니 타지마가 입을 열었다.
“하나이, 왜 유카타 안 입고 왔어?”
“응? 내가 그걸 왜 입어. 시노오카면 모를까. 같이 오면 좋았을 텐데.”
“너도 잘 어울릴 거야.”
“중학교 때 훌쩍 자라서 그런 옷은 살 틈이 없었어. ……뭐야, 그 얼굴은.”
“쳇. 나도 하나이 만큼 클 거야!”
“……부러워서였냐.”
타지마는 정말 아쉬운지 연방 투덜댔다. 같은 사내자식이 입는 것보다 여자애들이 입고 다니는 편이 더 귀엽지 않은가? 하나이는 갸웃하며 타지마의 불평을 한 귀로 듣고 흘렸다. 그의 생각을 이해하는 것은 미하시 속을 아는 것처럼 힘들었다. 누구나 타인을 잘 이해하는 일은 힘들었지만 하나이는 유독 타지마의 마음을 알 수가 없었다. 그것은 아마 심하게 의식하고 있는 탓일 것이다. 너무 알아내려 노력하다보니 길을 잃은 기분이었다.
이곳, 저곳을 둘러보며 구경하는 하나이의 얼굴을 느슨하게 풀려 있었다. 타지마는 긴장이 풀린 하나이의 얼굴이 낯설었다. 그는 언제나 팽팽한 활시위 같았다. 반에서는 어떻게 지내는지 모르지만 연습할 때나, 마운드에서 그는 주장이었다. 감독님이랑 다른 의미로 팀을 책임지는 자리였다. 모두를 챙기고 스스로마저 독려해야하는 입장이었다. 타지마는 그런 하나이가 굉장히 힘들 것이라 생각했다. 마냥 키만 큰 멀대 라면 우습게 볼 수 있을 텐데, 그러지 못해서 계속 바라보다보니 어느새 관심이 싹텄다. 이렇게 다른 곳을 바라보는 하나이의 귓바퀴부터 뒷목까지의 단아한 선이 무심코 타지마의 시선을 빼앗기도 했다. 단순히 팀 동료나 친구를 향한 마음이 아니라는 것을 타지마는 빨리 눈치 챘다. 적당히 어둡고 등은 붉은 기가 돌아 다행이었다. 아니었다면 타지마에게서 나오는 열기를 하나이가 알아 챌 것이었다.
주변을 헤매던 하나이의 눈이 한 곳에 머물렀다. 인형을 총으로 쏴서 넘어뜨리는 것이었는데, 의외라 빤히 바라보니 하나이가 변명하듯 말을 꺼냈다.
“동생들이 저런 인형 좋아하거든. 여기도 따라오고 싶어 했는데 엄마가 못 가게 막았어. 애들끼리는 위험하다고.”
“네가 신경쓸까봐 말리신거겠지.”
“그런가? 난 괜찮은데. 집에 가면 더 시달릴 거야.”
그렇게 말하면서도 하나이는 인형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어떻게든 구해서 동생들에게 선물로 주고 싶은 모양이었다. 타지마는 냉큼 먼저 나서서 주인아저씨에게 돈을 내밀었다.
“아저씨! 이거 쏘면 주는 거 맞죠?”
“그래. 도전해 보는 거냐?”
“네. 저 큰 거 가지고 싶어서요. 재밌을 것 같은데요?”
“큰 것은 한 발에 넘어뜨리기 어려울 테고, 작은 것 열개면 큰 것이랑 바꿔준단다. 어떠냐?”
“오, 좋아요!”
하나이가 말릴 새도 없이 타지마는 냉큼 총을 잡았다. 들고는 거리를 재더니 한 발을 쏘았다. 귀에 리본이 달린 작은 곰인형이 맞아 뒤로 넘어갔다. 사격 경험이 있나 싶을 정도로 타지마는 거침없었다. 같은 남자인 하나이 눈에도 제법 멋있어 보일 정도로 잘 맞췄다. 눈 깜짝할 사이에 큰 인형 두개를 얻더니 하나이 품에 안겼다.
“여자 친구 주는 것 아니었니?”
“이 친구 여동생이 예쁘거든요.”
“두 명 인가 봐? 오빠 닮았으면 예쁘겠네.”
“네! 많이 닮았어요.”
하나이는 칭찬인지 아닌지 구분할 수 없는 둘의 대화에 난감한 미소를 지었다. 인형이 커다래봤자 한 팔에 하나씩 끼면 그만이었지만 그 덕에 손을 쓸 수는 없었다. 아저씨는 타지마 외모를 보고 속았다며 이렇게 잘할 줄 몰랐다며 아쉬워했다. 이 인형이 고작 스무 발 값은 아니다 싶었지만 이미 벌어진 일이었다. 동생들이 좋아할 것을 생각하니 하나이 입에도 미소가 그려졌다. 타지마는 그런 하나이의 손목을 잡아끌었다.
“이제 뭐 좀 먹자! 야끼소바 어때? 아니면 타코야끼?”
“빙수 먹을까? 아, 근데 나 손이 안 비는데. 어떻게 먹지?”
“어디 앉을 곳 찾자!”
“어, 응. 그래.”
맛있어 보이는 것을 찾아 걷다보니 타지마의 양 손에는 먹거리와 음료가 들려 있었다. 그러나 음식냄새는 위를 괴롭히는데 불행히도 축제 내부에 마련된 테이블은 이미 만석이었다. 타지마는 둘러보더니 안 되겠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사람들이 너무 많은데. 다른 데로 가자.”
“다른데? 여기 말고 앉을 곳이 있어?”
“응. 저쪽으로 가면 쉴만한 곳이 있어. 나 이 축제 몇 번 와봤거든. 형이랑 누나들이랑.”
“아…….”
오늘은 책임지겠다더니 타지마는 평소보다 적극적이었다. 씨익 웃는 모습이 여유로워 보이는 것은 그대로인데, 평소의 장난끼 가득한 미소가 아니라 듬직해보였다. 마운드 밖에서 이렇게 보이는 것은 흔하지 않은 일이라 하나이는 그에게 맡겨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팽팽한 줄은 언제고 끊어지게 되니까. 가끔은 늘어져도 나쁜 일이 아니었다. 아니, 사실은 꼭 필요한 일이었다.
“배고프지? 한 입 먹을래?”
“어?”
하나이의 코앞에 타지마가 빨대가 꽂힌 음료를 들이밀었다. 그는 목이 말라서 순순히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타지마는 장난스러운 눈빛을 보이더니 음료수를 확 자기 쪽으로 당겨 못 마시게 했다.
“야!”
“헤헤. 장난이야, 장난. 심각한 표정하니까 그러지. 진짜 줄게 먹어.”
“내가 진짜……. 내가 안 먹고 만다.”
“에이, 그러지 말고. 응?”
하나이는 투덜대면서 안 먹는다고 고개를 돌렸다. 뭘 보고 믿었던 건지, 30초 전의 자신에게 반성하라고 외치고 싶었다. 그러나 속을 모르는 타지마는 싫다는 하나이에게 기어코 빨대를 물렸다. 더워서 말랐던 입에 수분이 들어오자 싫다고 내뱉은 말이 무색하게도 반 이상을 한 번에 삼켜버렸다.
“시원하지?”
고개를 끄덕이자 타지마는 다행이라는 듯 마주 끄덕였다. 그리고 이젠 옆에 서서 하나이를 인도했다. 그를 따라 걷다보니 축제의 소란스러움에서 벗어났다. 몇 개의 계단을 지나 언덕을 조금 오르자 시야가 탁 트였다. 그들의 발 아래로 등불이 떠다녔다. 바람이 불어와 하나이의 이마에 맺힌 땀을 훔쳐갔다.
“하나이, 여기 앉아.”
평평한 바위위에 걸터앉은 타지마가 하나이를 불렀다. 둘 사이에 먹을 것을 내려놓고 인형을 하나씩 무릎에 올려두자 제법 앉을 만 했다. 허기를 채우기 위해 사들고 올라온 타코야끼를 하나씩 입에 넣었다. 후후 불어 먹는 하나이를 보고도 덥석 삼킨 타지마가 비명을 질렀다.
“우와! 아직 뜨거워.”
“조심해, 조심.”
타지마는 남은 음료수를 들이키더니 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는 든든하기도 하고 귀엽기도 하고, 재밌는 녀석인데 가끔은 곤란할 정도로 멋있기도 했다. 하나이는 타지마를 어떻게 정의 내려야 할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여기서 불꽃놀이 보면 멋있어. 곧 시작할 테니 보고 내려가자.”
“그래.”
두 사람은 몇 개를 더 집어먹으며 화기애애하게 대화를 했다. 주로 화제는 야구 이야기였다. 아니면 미하시라던가, 아베라던가, 혹은 미즈타니이기도 했다. 두 사람의 접점은 야구와 니시우라 팀뿐이었다. 슬슬 대화 내용이 떨어져 간다 싶었을 때, 타지마가 마치 아주 치기 어려울 것 같은 공을 보는 눈으로 하나이를 바라봤다. 하나이가 이상함을 느끼고 의아해 할 때, 타지마는 어렵게 입을 열었다.
“하나이, 있잖아……. 나 너를…….”
“어, 시작한다!”
피융 하는 소리와 함께 불꽃놀이가 시작됐다. 타지마의 마지막 말은 불꽃이 터지는 소리에 묻혀 아스라이 사라졌다. 하나이는 타지마의 말을 듣지 못한 채 화려한 빛에 시선을 돌렸다. 하나이의 시선이 자신에게서 벗어나자 타지마는 안타까움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허공으로 불꽃이 비산했다. 색색의 조화는 언제나 다시 봐도 예뻤다. 금세 사라져버리는 것에 하나이의 관심을 뺏긴 것은 어쩔 수 없는 걸까. 타지마는 포기하려다가 마음을 다잡았다. 불꽃이 하나가 져버리고 새로운 것이 봉오리를 피우기 전에 타지마는 일어나 하나이의 앞에 섰다. 하나이가 의아한 듯이 올려보자 고개를 숙여 살짝 입술을 훔쳤다. 그리고 다시금 불꽃이 피어올라 죽기 위한 굉음이 울렸지만 하나이는 그의 말을 알아들었다. 그리고 밤하늘을 점령한 불꽃색이 하나이의 얼굴에 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