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길을 걷고 있었다. 아니 이것이 길인지 아닌지 알 수가 없었다. 짙은 어둠이 사위에 내려앉았다. 아베는 소리라도 들어보려 노력했지만 작은 풀벌레 소리마저 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무섭지 않았다. 사람에게 빛이 없는 곳이란 공포심이 들어야 했지만 묘하게 이곳은 아베를 편안하게 만들었다. 


 그제야 아베는 깨달았다. 이곳의 공기는 따스했다. 그러니 무서울 리 없었다. 온 공간이 아베를 환영하고 있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데도 걸음을 내딛는 행위에 망설임은 없었다. 그저 숨 쉬는 것 마냥 당연한 일이었다. 이대로 영원히 이곳에 있어도 될 것 같았다. 


 주위를 둘러보자 서서히 눈이 어둠에 익숙해지는지 희미한 윤곽이 잡혔다. 그에 화답하듯 여기저기서 반딧불 같이 작은 빛 무리가 떠다니기 시작했다. 그러자 점점 그의 앞에 있는 것이 확실히 드러났다. 


 아아, 이래서 벌레가 없었던 것이었다. 아베는 제 앞에 있는 커다란 거미를 보면서 깨달았다. 제 몸집보다 훨씬 큰 거미였다. 아베는 그의 집에서 아무렇지 않게 걷고 있었다. 거침없이 없이 내딛었던 길은 사실은 아래가 천 길 낭떠러지인 거미줄에 불과했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아베는 이 상황이 두렵지 않았다. 이 거미는 그를 위해 존재했다. 아베는 그것을 알 수 있었다. 거미가 실을 뻗어 아베의 몸에 감아 끌어당길 때도 저항할 기분은 전혀 들지 않았다. 그저 거미의 일부가 되어 한 몸이 되고 싶었다. 


 그의 입에 삼켜지자 아베는 눈을 떴다. 


 우르릉 소리가 났다. 지독하게 내리는 비는 올해의 마지막 비였다. 곧 겨울이 다가와 눈으로 바뀌기 전 세차게 자신의 존재를 주장했다. 이윽고 소리를 따라 번개가 내리 꽂혔다. 번쩍하는 빛이 아베의 시선에 들어오자 머리맡에 드리운 그림자를 알아차렸다. 


 깜짝 놀라야 정상일 텐데, 아베는 그러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가 누군지 이미 알고 있었다. 인기척  만으로도 그 존재를 의식하게 하는 것은 오로지 그 사람뿐이었다. 


 아베의 침대 옆에 서서 그를 내려다보고 있는 것은 미하시였다. 아베와 눈이 마주치자 조용했던 미하시의 눈에 물결이 퍼졌다 이윽고 사라졌다. 사라진 번개의 빛으로는 미처 아베가 눈치 챌 수 없는 작은 변화였다. 


 “도련님, 주무시지 못하시겠습니까?” 

 “천,둥 소리가…….”


 10대 초반인 미하시는 아직 어린나이였다. 바쁜 부모를 대신해 어리광을 받아주는 역할은 아베의 일이었다. 일이 아니더라도 아베는 기꺼이 그의 어리광을 받아주고 싶었다. 사랑스러울 정도로 아베를 잘 따르는 착한 도련님이었다.


 이런 일이 처음도 아니고 바로 침대로 들어와도 되련만, 미하시는 고집스레 그가 깨어나길 기다리고 있었다. 가엾게도 미호시의 후계자는 어릴 때부터 아이다움보다 예절을 주입받은 모양이었다. 아베는 잠자코 침대 시트 한 쪽을 걷어 올렸다. 


 “같이 주무시겠습니까?”

 “그,래도 되,는 거야?”

 “네. 이리 오세요.”


 화색이 된 목소리로 대답한 미하시가 잠시 망설이다가 침대 안으로 들어왔다. 오래 서 있었는지 그의 몸은 서늘했다. 이래서는 감기에 걸릴지도 모른다. 아베는 걱정스러워 미하시를 끌어안았다. 놀랐는지 미하시는 몸을 굳혔다. 아베는 손을 들어 천천히 미하시의 등을 토닥였다. 


 “푹 주무세요. 제가 지켜드릴게요.”


 미하시는 대답하지 않고 아베의 품에 파고들었다. 아베는 규칙적으로 반복해 미하시가 잠들 때까지 토닥이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미하시가 새근거리는 소리를 내며 잠드는 것은 금방이었다. 아베는 무거운 눈꺼풀을 그 후에야 내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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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라에서 잠깐 떠든 도련님 미하시. 거미이야기는 꽃님이 하셨는데 너무 잘 어울려서 등장시켜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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