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00 트윗 리퀘 

for 리네





 밤은 야성이 눈뜨는 시간이었다. 아니, 야성이라는 것은 저 인간들 기준의 말이었고 아이렌에게는 지극히 당연한 욕구를 채우기 위해 준비된 무대였다. 웨어울프는 육식동물이다. 그것도 최상위 포식자였다. 생명체를 잡고 그 목줄기를 물어뜯어 동맥이 터지는 그 순간을 사랑했다. 그들에게는 인간처럼 식량을 쌓아둔다는 개념따위는 없었다. 딱 필요한 만큼 취한다. 인간들보다는 자연에 맞닿아 있기에, 차라리 엘프들과 더 가까운 존재가 그들이었다. 물론 엘프들이 들으면 웃겠지만, 순리에 거스르지 않는 습성은 두 종족의 공통점이었다. 


 문제는 아이렌의 목적을 위해 동행한 녀석들은 인간이라는 것이었다. 아니 한 놈은 반반이던가? 딱히 류네인의 혈통이 아이렌에게 중요하지는 않았으니, 다 인간이라고 뭉뚱그려도 상관없었다. 예전이었다면 예비식량이나 도시락 정도로 생각할 존재들이었겠지만 한동안 그들과 같이 있어본 결과 그런 취급을 했다간 국물도 없을 것 같았다. 첫째로 클랜을 공격한 흉수를 찾기 위한 지혜는 이들이 더 나았으니 거스르기 껄끄러웠고, 둘째로 무리지은 인간들에게는 한마리 늑대가 무섭지 않을 수도 있다는 불편한 진실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그 무리의 수장인 사이카는 더더욱 겁대가리가 없었는데, 페이옌이나 지아웨이 정도가 아니라면 이빨도 안들어가게 질기게 생겼다. 여하튼 불편하단 소리였다. 처음부터 무기를 들이대며 대답을 강요했던 류네인보다 이유를 설명해주며 제 뜻대로 하게 만드는 사이카가 어딘가 더 무서웠다. 


 그래서 아이렌은 모두가 잘 준비를 하면 슬쩍 자리를 비웠다. 돌아다니다보면 홀로 떠도는 오크나, 혹은 죽기 직전의 인간이나 기타등등 먹을만한 사냥감을 찾을 수 있었다. 혼자 강할 수 있다면 그들은 더이상 먹잇감이 아니기에 아이렌은 죄책감 없이 능숙하게 사냥을 마쳤다. 강한 발톱과 이빨에 대항할 만한 힘도 없는 것들을 잡는 것은 도축에 가까웠다. 동물도 괜찮지만 가끔은 휴머노이드의 고기가 필요했다. 필요한 영양소가 있다며 퍼피때 엄하게 가르치던 지아웨이가 떠올랐다. 적을 찾기 위해 따라왔지만 남은 이들이 잘 지낼지 약간은 걱정이 됐다. 예전 같으면 느낄 일이 없던 감정에 아이렌은 조금 울적해졌다. 자기보다 강한 존재를 걱정하는 것은 쓸데 없는 짓이었다. 죽었다면 어쩔 수 없고 살아있다면 돌아가서 보고할 흰 늑대들이 남아있는 것이었다. 개인의 생사를 걱정해 주는 것은 퍼피들에게나 해당되는 일이었다. 아이렌은 인간들에게 이상한 것을 배운 모양이었다. 


 배가 부르니 이상한 상념이 끼어들 여지가 생긴 것이다. 아이렌은 그렇게 스스로를 납득시켰다. 제법 괜찮은 이유같아 만족도 했다. 이제 슬슬 일행에게 돌아갈 시간이었다. 밤도 깊고 날뛰기도 했으니 스트레스도 풀렸다. 개운한 하루였다. 휴먼폼이라고 해서 발소리가 나는 것은 아니었다. 아이렌은 기척을 죽이는 것이 습관이었다. 아니, 보통 울프들의 습관이 맞을 것이다. 타고난 사냥꾼의 습성은 생활에 녹아 있었다. 그렇게 소리 없이 도착하자 익숙한 뒷 모습이 보였다. 


 모닥불을 등지고 있던 사내는 정확히 아이렌이 서있는 수풀 뒤를 바라보고 있었다. 들켰나 싶어서 미동도 않고 서 있는데 달그락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주루룩 주전자에서 물을 따르는 소리가 들렸다. 아니, 아이렌의 예민한 후각에 저건 류네인이 끓여두곤 하는 허브티였다. 역시 모르는구나 싶어 콧대가 높아진 아이렌은 그를 놀래킬 생각에 기분이 좋아졌다. 확하고 뛰어든다거나 뒤로 돌아서 등을 툭 건드려볼까 하며 여려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그러다 예상치 못한 소리에 미간을 찌푸렸다. 준비한 컵이 하나가 아니라 두 잔이었다. 


 “다녀오셨습니까?”

 “쳇. 알았어?”

 “옌보다는 부주의하네요.”


 아이렌은 정확히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목소리에 수풀을 해치고 나왔다. 머리를 긁적이며 입술을 비죽이고 투덜대고 싶었지만 인간 수컷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긴 싫어 옌을 따라 팔짱을 꼈다. 사이카는 아이렌이 받던지 말던지 옆자리에 컵을 두고는 제 것을 홀짝이며 마셨다. 예민한 제프나 류네인이 아니라 사이카에게 걸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흘끗 시야에 그가 천천히 어깨에 힘을 푸는 것이 걸렸다. 이성 없이 울프폼으로 나타났다면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총을 쐈을 것이 뻔한 몸짓이었다. 아이렌은 흥 하고 코웃음을 치고는 당당히 옆에 철푸덕 앉아 차를 입에 댔다. 비린 혈향이 조금은 씻겨 나가는 기분이었다. 


 “뭐라고 안해?”


 다른 인간들은 처음에는 깜짝 놀랐다. 이미 알고는 있지만 그걸 재확인 하며 납득하는 과정에 딜레이가 있는 듯 보였다. 옌 덕분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겠지만, 사실 그보다 더 숨기는 것이 서툰 아이렌이기에 더 선뜩하게 느껴졌을지도 몰랐다. 사이카는 아이렌의 말이 무엇을 뜻하는 지는 알았지만 딱히 대답해줄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그래서 지금 가장 신경쓰이는 것을 지적하기로 했다. 


 “손수건 필요하십니까?”

 “무슨 소리야.”

 “애도 아니고 입가에 질질 흘리고 먹었기에 하는 말입니다.”


 아이렌은 화들짝 놀라 급하게 입 주변을 손으로 훔쳤다. 정말이지 이 인간은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아이렌은 어떻게든 다음에는 한 방 먹이리라 다짐하고는 팩 돌아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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