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생 전력 제7국 [달콤한 그 무엇]




 내려둔 블라인드 사이로 햇살이 고개를 내밀었다. 빛이 얼굴을 두들겨 백기의 잠을 깨웠다. 살그머니 뜬 눈으로 비치는 세상은 밝고 명료했다. 익숙하지 않은 상황에 백기는 잠깐 어리둥절했다. 얼굴 위에 얹어진 안경을 눈치챈 것은 그 다음이었다. 분명히 간 밤에 벗어서 놔둔 기억이 있는데 어째서 쓰고 있는지 졸린 머리는 빠르게 판단을 내리지 못했다. 


 “잘 잤어?”


 옆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백기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간단한 일이었다. 백기가 자신의 안경을 가져다 쓰지 않았다면, 남은 사람이 했을 것이 당연했다. 선명하게 들어오는 연인의 모습에 백기는 느리게 눈을 깜빡였다. 문을 열어준 기억도 없었다. 얼마전에 교환한 스페어키를 사용해서 살그머니 들어와 깨우지 않으려고 조심히 움직였을 석율을 생각하니 자기도 모르게 미소가 맺혔다.


 “언제 왔어요.”


 반응이 느린 그를 재밌게 바라보던 석율은 곱게 눈을 접어 웃었다. 


 “야근하고 새벽에.”

 “무리하지 말고 낮에 봐도 되는데…….”

 “어우, 백기씨. 이럴 때는 그냥 좋아하는 쪽이 상대를 기쁘게 하는 행동이야.”


 과장하듯 톤을 올리며 석율은 백기의 입술에 손가락을 얹었다. 기쁘지만 피곤했을 석율의 스케쥴을 생각하면 그저 좋게만 말할 수는 없었다. 그 마음을 모르지 않는 석율은 아침임에도 불구하고 상큼하게 웃었다. 석율이 웃으면 백기는 반사적으로 따라 웃는다. 석율은 그것이 좋아 백기 앞에서는 더 웃고는 했다. 


 “게다가 오늘은 꼭 아침에 보고 싶었거든.”

 “왜요?”

 “기다려봐.”


 백기의 이마에 가볍게 키스를 날리고는 석율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같이 일어나려는 백기를 손을 저어 제지하고는 팔랑거리며 걸어둔 자켓을 뒤졌다. 작지만 세련되게 포장된 상자는 마치 석율의 센스를 모아놓은 것 같았다. 백기의 가슴위에 그것을 올리자 바스락 거리는 소리가 났다.


 “이게 뭐에요?”

 “열어봐.”


 멀뚱히 석율을 바라보던 백기는 순순히 포장을 열었다. 안에 들어 있는 것은 보기만해도 달아보이는 초코렛이었다.  


 “오늘 처음으로 주고 싶었거든.”


 석율은 가볍게 자신을 포장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한 겹 벗기면 전혀 다른 석율이 있었다. 가끔 제 속을 보여줄 때마다 백기는 놀라기도 했고 기쁘기도 했다. 이번 처럼 귀여운 부면이 나타나면 백기는 제 안에 있던 빈 부분이 달콤한 무언가로 채워지는 기분이 들곤 했다.


 “아- 해봐.”

 “네?”


 하나를 집어 속 포장지를 벗긴 석율이 어서 입을 벌리라는 듯 입술에 초코렛을 가져다 댔다. 단내가 확 풍겨왔다. 깨자마자 먹어도 괜챃을까 싶었지만, 가져온 정성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백기는 굉장히 오랜만에 다른 사람 손으로 음식을 받아 먹는 것이 약간은 부끄러웠지만 결국 입술을 벌렸다. 혀에 닿는 초코렛은 쌉싸름 하면서도 꽤나 달았다. 그것이 마치 석율같아서 제법 마음에 들었다. 


 맛을 음미하느라 무방비해진 틈을 타 석율의 입술이 백기에게 밀착했다. 백기는 고개를 돌리려다 멈췄다. 연인사이에 이정도 애교는 괜찮지 않은가. 부드러운 혀가 오가면서 초코렛이 녹았다. 하나를 다 녹일때까지 둘은 서로를 놓지 않았다. 짧지 않은 입맞춤이 끝나고, 백기는 석율의 입가에 남은 초코파우더를 핥았다. 이번에는 석율이 놀란 듯 살짝 눈을 크게 떴다. 백기는 그런 그의 목을 끌어당기며 속삭였다.


 “하나 더 먹을래요?”


 사르르 녹을 것 같은 석율의 미소는 충분한 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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