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알기 전에






 세상에는 참 할 것이 많다. 수많은 것을 볼 수 있는 시야를 잘라내어 대학이라는 하나의 문으로 고정시키는 곳이 바로 학교였다. 가장 힘든 좁은 문으로 수백의 아이들을 몰아넣는 학교에서 개성은 거세당하고 꿈을 가장한 목표를 획일 시켜 가장 앞에 있는 아이에게만 정당성을 부여한다. 그것에 가장 잘 적응한 학생은 이번 학년에는 장백기였다. 


 석율은 그런 백기가 신기했다. 스스로도 규격 외라고 자신을 평가하는 만큼 밖에서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애들을 보는 일은 흥미로웠다. 마치 개미의 행렬을 지켜보는 베짱이가 된 기분이었다. 굳이 대학이 아니라도 먹고 살 길은 많고, 하나의 수단으로 대학을 바라보는 이상 석율이 하는 노력은 그들과는 방향이 달랐다. 하나도 재미없어 보이는 얼굴로 하루를 보내는 그들은 과연 행복할까? 모범생에 우등생이라 선생님의 총애를 한 몸에 받는 장백기를 보면 그는 항상 아무런 감정도 내비치지 않고 있었다. 


 석상 같은 그 얼굴에 인간다운 표정이 더해진다면 어떨까.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것이 관계의 시작이었다. 사람은 동류에 흥미를 가지지 않는다. 다른 사람에게 향하게 되는 관심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석율은 처음엔 흥미반 재미반의 마음으로 백기를 바라봤다. 


 아침부터 밤까지 같은 반에서 하루의 반 이상을 같이 보내다보면 아예 시선 밖에 두지 않는 이상 어느 정도는 사람을 파악하게 된다. 수업 중에는 집중을 풀지 않는다. 쉬는 시간에는 책을 읽거나 이어폰으로 귀를 막고 눈을 감는다. 가끔 선생님의 심부름을 하거나 기지개를 펴고 잠시 걷기 위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면 백기는 꽤 정적인 타입이었다. 그와 교류하는 친구들도 대화를 위해 백기의 자리로 가고는 했다. 매점의 앞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계단을 뛰어 내려가는 다른 급우들과는 달랐다. 


 석율은 친구들과의 협상과 회유를 통해 점점 자리를 백기의 뒤로 옮겼다. 원래 오는 대로 앉는 자리였기에 담임선생님의 제지는 없었다. 어느 정도 고정되어 있던 자리 배치였기에 몇몇 그룹으로 나뉜 애들의 거부가 있을 법도 했지만, 석율은 반의 인기인이었다. 두루두루 친한 그가 곁에 있는 것에 싫어하는 사람은 없었다. 


 백기의 대각선 뒷자리를 차지하자, 석율은 더 이상 자리를 옮기지 않았다. 그러자 조금씩 다른 것도 보였다. 지루한 수업에도 고개를 빳빳이 들고 집중한다고 여겼는데 노트 구석에 낙서를 하고 있었다. 슬쩍 옆을 지나가다보면 이어폰 밖으로 들리는 노래는 클래식이 아니라 락이었다. 흔히 듣는 아이돌 노래가 아니라는 것은 백기다웠다. 점심시간에 나가서 실컷 축구 한 판하고 돌아오니 백기는 혼자 만화책을 보고 있었다. 석율은 거기서 혼자 속으로 웃었다. 


 ‘아, 장백기도 사람이구나.’


 석율은 혼자 그를 ‘다른 사람’ 취급한 것을 정정했다. 아니, 다른 사람은 맞았지만 별세계 외계인은 아니었다. 그를 한 겹 벗기고 나면 뭐가 있을지 더욱 궁금해졌다. 이제 어떻게 한 발 다가갈 것인지 즐거운 고민을 시작할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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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발 리퀘스트. 커플링은 율백, 키워드는 고딩입니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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